범법자가 손꼽아 기다리는 광복절?
범법자가 손꼽아 기다리는 광복절?
  •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 승인 2010.08.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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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 우롱하는 대통령 사면권 행사
해마다 8.15 광복절에는 해방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보다 ‘대통령 광복절 특별사면’이 더욱 주요 이슈로 등장한다. 언제부턴가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고유권한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국민화합’ ‘경제발전’이라는 명분하에 남발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참여정부에서도 국민적 반발에 직면했지만 ‘8.15특사’를 자주 강행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세운 이유는 국민화합이었다. 다만 법치를 유린한다는 비판때문에 대통령 사면권을 억제하는 사면심사위원회를 두자는 합의는 이끌어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도 대통령 사면권 행사의 남용 관행은 변함이 없다. 이를 견제하는 장치로 만든 사면심사위원회의 위원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심의하는지 알 길이 없고 당초 기대했던 견제역할은 물건너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사 국민화합 이유로 남발 … 사면심사위원회 무용지물

주요 언론에서는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8·15 특별 사면을 놓고 여론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에 빠져 있다며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조선일보 8월6일자)

"정치권으로부터 서청원 옛 친박연대 대표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에 대한 사면 건의가 많고 실무 작업 명단에 이들이 포함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론조사를 해 보면 국민의 3분의 2 이상이 사면을 남발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고민..."

이 정도의 보도를 보면, 청와대 내부에서 이미 사면권 범위에 대한 정리작업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누구를 넣고 빼느냐에 대한 대통령의 심중을 파악하여 사면위원회가 ‘알아서 기는’ 행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8년 8월 거물급 정치·경제인 등을 포함해 34만여명을 사면하면서 8·15 경축사를 통해 "건국 60주년의 새로운 출발과 국민 통합을 위해 사면을 단행했지만, 이제 제 임기 동안 일어나는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이건희 사면 … 시시때때 바뀌는 이 대통령 '원칙'
'언플'로 여론 간보는 청와대 … 조선 "서청원 사면 대통령 고민중"

이 대통령은 과연 자신이 한 말을, 그것도 불과 2년전에 한 말을 실천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임기 동안에 일어난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언을 지킬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지킬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 연말 경제·체육계가 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위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사면을 요청하자 이를 허용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않다. 아마 이 대통령도 원칙과 현실사이에서 고민했겠지만 결국 상황 논리를 택했다.

대통령이 공언한 말을 스스로 지키지 못할 때 허언을 남발하는 지도자가 된다. 이런 지도자가 믿음과 국민적 지지를 얻어내는 경우는 보지못했다.

청와대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대통령 사면권 행사의 범위를 슬쩍 떠보고 있다. 조선일보는 청와대의 고민을 내세워 친절하게 여론을 떠보고 있다. 이 신문은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여 "여·야와 계파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 254명이 서 전 대표 사면 요청 탄원서에 서명해 제출했다"면서 "특히 친(親)박근혜계와의 화합 차원에서 부담이 크다"고 보도했다. 서청원 사면여부에 대한 간접 여론조사인 셈이다.

이 신문은 ‘한나라당 지도부’라는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하여 서청원 사면의 당위성을 청와대 입장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권 '주고받기'식 … 선거용 '베풀기식' 등 방식도 다양
화이트 칼라와 권력층에 집중된 사면, 국민 법 불신 가중

한나라당 지도부가 "거의 똑같은 혐의(정당 총선자금 차입금)로 처벌된 문국현 창조한국당 고문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것과 비교할 때 서 전 대표 실형(實刑)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거기다 "고령(67세)에 심장질환으로 돌연사 위험이 있다"는 의사 소견이 있고, 서 전 대표측도 "정치 복귀 뜻이 없기 때문에 최소한 남은 형기만이라도 면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조선일보 8월6일자)

한국의 사면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시작됐으며 그 이후 한차례의 수정, 보완도 없이 행해져 왔다. 3.1절, 석가탄신일, 광복절, 성탄절, 대통령 취임 등을 경축하기 위해 정례 절차처럼 사면권은 남용돼 왔고 거의 매번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노태우 대통령 재임기간중 9643명에 불과했던 대통령의 사면 대상 수는 김영삼 대통령 재임 기간 총 8회에 걸쳐 4만3805명으로 늘어났다. 김대중 정권하에서는 또 다시 더 늘어나 7만6527명에 이르렀다. 사면이 이처럼 늘어나다 보니 그 유형과 방식도 다양해졌다.

정치권의 타협에 의한 '주고받기식', 자기세력을 빼내기 위한 '끼워넣기식', 야당분열을 노린 '물흐리기식', 선거 등을 위한 '베풀기식' 등의 형태가 있다. 어느 경우든 대통령의 무분별한 사면권 행사는 국민화합은 커녕 국민통합을 저해하고 법을 불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사회적 손실이 만만치 않다.


사면권이 주로 화이트칼라, 정치인 등 전직 권력가들, 대통령 아들들에 집중돼 나타났기 때문에 법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다. 반사회적 부패, 구조적 비리 등에 연루된 고위직 공무원들은 사면, 복권된 반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소규모 부정비리 관련자들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에 대한 비판보다 그 입장을 동조하는 행태의 보도는 권력자에게는 사랑받게 되겠지만 국민적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심사위원도 공개하지 못하는 사면심사위원회, 사면을 부추기는 경제단체, 주변 참모들, 제왕적 사면권 행사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대통령. 원칙과 법치가 무너지고 지도자 스스로 자신의 발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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