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영남' 경찰 수뇌부에 맞선 '경찰대 1기 쿠데타'인가
'고려대-영남' 경찰 수뇌부에 맞선 '경찰대 1기 쿠데타'인가
  • 민중의소리
  • 승인 2010.06.2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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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의 조현오 서울청장 사퇴요구
현직 경찰서장이 서울경찰청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했다. 직급상으로만 봐도 일선 서장이 경찰 최고지휘부에게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항명’ 수준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 강북경찰서 채수창 서장은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양천서 고문사건은 “가혹행위를 하면서까지 실적경쟁에 매달리도록 분위기를 조장한 서울경찰청의 지휘부의 책임”이라면서 “근원적 책임이 있는 서울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채수창 현 강북경찰서장이 28일 오후 2시 강북경찰서에서 "조현오 서울청장 등 지휘부가 주도한 실적경쟁 때문에 양천서 고문사태가 발생했으며, 이에 책임을 지고 현 지휘부가 사퇴해야 한다"는 중대 발표를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채 서장은 조현오 청장을 향해 “조직원 잘못에 절대 관대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지휘부의 무책임하고 얼굴 두꺼운 행태에 분개한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항명 수준의 사퇴요구를 통해 경찰 내외의 논란을 일으킨 것이다.

왜 갑자기 경찰 조직내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이른바 ‘항명’의 이면에는 이명박 정부 이후 경찰인사에서 가장 혜택을 본 ‘고려대 TK’ 라인과 경찰조직 내 신진세력인 ‘경찰대 1기’가 있다는 분석이다.

사건의 발단이 된 양천서 고문사건은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경찰 내에서는 ‘실적주의 때문’이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화살은 양천경찰서장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부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

경찰 내에서는 지휘부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견이 퍼져나갔다. 경찰 안팎에서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강희락 경찰청장 보다는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채 서장의 ‘퇴진요구’는 이런 논란을 증폭시키는 측면이 있다.

채수창 서장의 조현오 청장 사퇴요구가 경찰 인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경찰대 1기’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에 무게를 더해준다. 채수창 서장과 양천서 고문사건으로 대기발령 중인 정은식 전 양천경찰서장은 경찰대 1기다.

경찰 안팎에서는 조만간 청와대에서 ‘인적쇄신’ 차원의 인사가 있을 것이며 경찰 지휘부 교체가 거론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강희락 경찰청장의 퇴진이 유력한 상태이며 조현오 서울청장 퇴진 여부도 관심사다.

조현오 청장은 이강덕 부산지방경찰청장과 윤재옥 경기지방청장과 함께 차기 경찰청장으로 거론돼 왔다. 재미있는 것은 조 청장이 강희락 현 경찰청장을 잇는 ‘고려대-영남’ 인맥의 핵심주자이며 나머지 두 명이 경찰대 1기라는 점이다.

차기 경찰청장 거론 인사, 조현오는 ‘고려대-영남’ 이강덕 윤재옥은 ‘경찰대 1기’

이명박 대통령 인사의 핵심 키워드는 ‘고려대’ ‘TK’로 꼽힌다. 경찰 인사에서도 이 키워드는 그대로 적용됐다. 현 경찰청장인 강희락 청장이 고려대 출신에 고향이 경북 성주이며 조현오 서울청장은 고려대-부산, 김석기 전 서울청장은 영남대-영일, 주상용 전 서울청장은 고려대-울진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찰요직을 고려대-TK(혹은 영남)이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조 서울청장은 강희락 청장과 고려대 3년 선후배 사이로 호형호제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고려대-영남이라는 이번 정권 최고의 ‘출신 성분’에 강 청장의 신임을 발판삼아 차기 청장으로 가장 유력시 되는 인물이다.

한편 윤재옥 경기청장은 경찰대 1기 중 최고 엘리트로 꼽힌다. 경찰대 입학부터 졸업, 경찰 내 승진까지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윤 청장은 경찰대 출신으로 모든 분야에서 1호였다. 2008년 9월에는 경찰대 출신 1호 치안감이 됐고 올 1월에는 경기청장으로 승진하면서 첫 치안정감이 되면서 조현오 청장이 서울청장이 된 것 보다 훨씬 주목받았다.

이강덕 부산청장은 2009년 3월 청와대 치안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차기 경찰 권력의 핵심으로 주목받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동향인 경북 영일 출신인 그는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인 포항에서 첫 경찰서장을 지내면서 이상득 의원으로부터 남다른 신임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에 참여했고 치안비서관으로 발탁되면서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항간에는 올 1월 인사에서 이 청장이 치안정감으로 승진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지만 ‘초고속 승진’이라는 부담이 작용하면서 부산청장으로 수평이동 했었다.

청와대 안팎에서 거론되는 경찰 인사 시점은 7월 하순이다. 이 대통령이 이른바 ‘스폰서 검사’ 국면에서 검찰-경찰 개혁을 주창했고 이에 따른 인적 쇄신 차원의 경찰 인사가 내달 단행된다는 것이다. 경찰청장의 임기가 2년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번 인사는 사실상 이 대통령 임기 내 마지막 인사다.

현재까지 이 대통령 인사 스타일상 ‘고려대-영남’을 벗어나는 것은 파격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재까지는 경찰대 출신 간부들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경력이 화려해도 ‘경찰 최고지휘부’로 올라가는 게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대-영남’ 중심의 청와대 인사...경찰대 출신 지휘부 진출은 봉쇄돼 있다?

경찰대는 1980년 설립돼 학비 전액 면제에 졸업 직후 ‘경위’계급을 달고 경찰 간부로 직행하는 ‘꿈의 대학’이었다. 1981년 첫 신입생 선발에서 경찰대는 226대 1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전국 석차 0.5%이내에 들어야만 지원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즉 경찰대 1기는 입학 당시 전국의 최고 엘리트로 꼽히던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경찰조직내 ‘386’으로 일컬어져 온 경찰대 1기는 경찰 내에서 파격적 인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경위로 임명되면서 ‘경찰간부학교’ 출신 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고속 승진을 이룬 것. 아직 50세도 되지 않은 경찰대 출신 중 ‘총경’ 급만 70명이 넘는다. 경찰의 새로운 권력집단으로 형성된 이들은 그간 경찰조직 내에서 상당한 견제를 받아왔다.

채수창 강북서장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경찰대 1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채 서장은 조현오 청장을 직접 겨냥했다. 양천서 고문사태를 조 청장 사퇴로 마무리 짓자는 것이다. 성과주의 논란이 커질수록 조 청장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 청장이 물러날 경우 차기 경찰청장 후보에 경찰대 출신 2명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차기 서울청장과 경찰청장에 경찰대 1기가 동반입성 할 가능성도 농후해진다. 게다가 이강덕 부산청장이 이 대통령과 동향인 경북 영월이고 윤재옥 경기청장도 경남 합천으로 영남권 인사다.

조 청장 사퇴가 ‘경찰대 출신 청장 시대’의 서막을 의미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경찰대 출신 청장 시대 열리나

‘경찰대 출신 청장 시대’는 경찰 조직내에서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공산이 크다.

올 1월 경찰 인사에서 윤재옥, 이강덕 두 청장의 인사 외에 주목 받은 지점은 경무관 이상 승진자 27명 중 10명이 경찰대 출신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인사에서도 25명 승진 중 8명이 경찰대 출신이었다. 특히 부산경찰청 주요 보직은 경찰대 출신이 장악했다. 부산경찰청 내 12개 과장직(총경급) 중 8개 자리가 물갈이 됐는데 이 자리 중 4개 보직을 경찰대 출신이 차지했다. 이강덕 청장 부임 이후 이뤄진 조치였다.

만약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이 경찰대 출신으로 채워질 경우 지방청장들이 물갈이 될 공산도 크다. 나이 많은 비경찰대 출신들이 자리를 내놓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통상 검찰과 경찰 인사에서 청장 인사는 ‘선배’들의 사퇴를 동반하게 되는데 만약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경우 지방경찰청에도 경찰대 출신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경찰대 2기에서도 치안감이 배출됐으며 1기 중에는 서천호 경찰청 경비국장, 조길형 충남청장도 치안감으로 치안감 이상 경찰 고위간부에 5명이 경찰대 출신으로 포진된 상황이다.

경찰대 1기는 경찰 내에서 ‘검찰에 대해서도 주눅 들지 않는 시대의 엘리트’로 꼽히면서 ‘경찰 권력의 신진세력’으로 육사 12기에 비교돼 왔다. 이들의 거침없는 승진 질주가 ‘정점’ 앞에서 ‘학맥’으로 가로막힐 상황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것이 채수창 서장의 기자회견이 현재 경찰조직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는 ‘고려대-영남’에 맞선 ‘경찰대 1기 쿠데타’의 신호탄으로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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