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 칼럼]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메멘토 모리,'그대도 죽을 것이기에 겸손하라'

2009-05-24     정거배 기자

히틀러의 광기가 휩쓸던 1943년 2월 독일. 화창한 어느날 아침에 한스 숄(Hans Scholl)과 소피 숄(Sophie Scholl)은 대담하게 대학 강의실 지붕에 올라가 유인물을 살포했다.

그들은 길거리와 대학가에서 나치에 반대하고 히틀러를 비난하는 유인물을 살포해 왔다.

마치 대한민국의 지난 70년대,80년대를 연상시키는 모습이다. 박정희와 전두환 독재가 서슬퍼런 그 시대,서울 등 대학가에서는 정부비판 유인물 몇 장만 뿌려도 미리 진을 치고 있던 사복형사들에게 잡혀갔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버스 지붕 환풍구에 유인물 뭉치를 올려 놓고 내리면 길가에 눈꽃처럼 유인물이 흩어 뿌려지는 광경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한스 숄과 소피 숄 등 히틀러 나찌에 대항,저항운동을 벌였던 젊은이들은 결국 비밀경찰 게슈타포에 체포돼 ‘조국에 대한 반역죄’ 등 죄명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이들은 사형선고를 받기 전 재판정에서 "누구든 결국 시작해야 할 일이었다. 우리가 말하고 행동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대신한 것일 뿐이다.그들은 다만 우리처럼 감히 행동에 옮기지 못했을 따름이다."며 항변했다.

이들의 짧은 생애는 누나인 잉게 숄(1917-1998)이 기록한 한 권의 수기가 1952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원제:백장미)로 출간됐다.



지난 80년대 전두환 독재치하에 있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도 열독했던 책으로, 수많은 청년학생들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도록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처럼 관통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자살과 사법적 혐의에 대해 면죄부를 주자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훗날 역사의 몫으로 맡기자.

고졸 출신인 그가 보수적이고 기득권 지향적인 한국사회에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인권변호사로, 그리고 정치인으로 대통령까지 된 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큰 진전이었다.

기득권층이 아닌 서민들도 양심과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바른 길을 걸을 때 국민은 결코 잊지 않는다는 역사적 사례를 만들었다.

인간 노무현의 죽음은 그가 바꾸고자 했던 후진적이지 못해 천민적인 우리 정치풍토에 맞선 마지막 승부수였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걸어온 도덕과 양심이 일련의 의혹 앞에서 난도질 당하는 현실에 맞서 죽음이라는 승부수를 던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할까?

또한 그의 죽음은 죽은 권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경고,즉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메멘토 모리는‘그대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이다.

로마시대 전쟁에서 승리한 후 돌아와 행진하는 장군 뒤에 노예 한 명을 세워 로마 시내를 지나는 동안 뒤에서 ‘메멘토 모리’를 기억시키는 풍습이다.

로마 제국 당시 전쟁에서 돌아온 장군들은 승리에 도취해 있을 때 ‘너무 우쭐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뜻으로 노예를 시켜서 승리한 장군에게 메멘토 모리를 복창하게 만든 것에서 유래했다.

대통령 재임시절 그의 파격적인 발언과 행보는 수십년간 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을 대하는 습관과 인식이 몸에 굳어져 있던 사람들에게는 품위문제로 논란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술집에서 안주삼아 노무현을 씹는 것이 국민 스포츠가 됐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국가지도자에 대한 과거 이미지에 익숙한 당시 국민들은 그에게 대통령이라는 호칭마져 생략하며 비난에 열을 올렸다.

그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탈권위와 지역주의 청산,민주주의 였다. 정치인 또는 인간 노무현의 진가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는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는 아예 불허하고 심지어 기자회견을 해도 경찰을 동원해 포위하고,기자회견을 하는 변호사도 강제로 연행해 가는 등 시대 역주행이 본격화 되고 있다.

이 암울한 시기에 민주화와 인권신장의 길을 걸어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예사로운 일이 아닐 듯 싶다.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고통으로 쟁취한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전기로 작용 할 가능성이 커졌다.

언론에서도 노무현 이미지와는 너무나 상반되는 이명박 정부와 국민간 대충돌을 우려하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책 내용 중에는 주인공인 한스 숄이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어떻게 이런 정부(히틀러)가 우리나라에 등장 할 수 있었을까요?”라고 질문한다.

아들의 질문에 아버지는 “우리가 가난했기 때문이지 원래 사람이 아무 희망도 바랄 수 없게 되면 나약해 지기 마련이며,누군가 감언이설로 장래를 약속한다면 속아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 약속을 하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말이다”라고 말한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제 살리기 공약으로 국민을 향해 747(연간 경제성장률 7%,세계GDP 4위,국민소득 7만달러)을 약속했다.

한나라당은 야당이었던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 등 정부각료와 청와대 비서진 등에 대해 성직자와 같은 엄격한 도적기준을 들이대며 발목을 잡아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한나라당은 청와대 한 비서관에 대해 논문표절 의혹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자리에서 끌어냈다.

그러던 한나라당은 정작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나서는 부동산 투기의혹에 위장전입, 논문표절이 정부 각료들의 기본 경력이 되고 있지 않은가?

한나라당의 야당시절 잣대로 한다면 지금 이명박 대통령부터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 한 켠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댓가를 치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한다.

그런 잣대와 기준을 들이대면 과거 친일을 했던 반민족행위자들을 필두로 독재정권하에서 권력을 누리고 호의호식하며 국민을 고문하고 탄압했던 자들을 포함한 수천명 아니 수만명의 자살행렬이 뒤따라야 마땅하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80년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 폭압통치를 했던 무리들은 오늘도 구차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자살을 미화하는 건 아니지만 죽을 용기도 없이 비참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들이 불쌍 할 따름이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추모 글을 통해 이렇게 애도했다.

"그(노 전 대통령)가 도덕적으로 흠집을 남긴 것은 유감스러운 사실이지만,전과 14범도 멀쩡히 대통령 하고,쿠데타로 헌정파괴하고 수천억 검은 돈 챙긴 이들을,기념공원까지 세워주며 기려주는 이 뻔뻔한 나라에서,목숨을 버리는 이들은 낯이 덜 두꺼운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당신은 내가 만나본 정치인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분이었습니다.“라고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