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서남권 조선산업, 탈출구 있나
해외 주문에도 금융권 RG발급 안 해 '발 동동'
2008-09-08 시민의소리김경대기자
우선 금융권의 자금지원 중단과 이명박 정부의 광역경제권 계획과 맞물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선박 건조 선수금을 받기 위해 필요한 ‘선수금 환급보증(RG-Refund Guarantee)’을 금융권에서 발급해 주지 않는 등 자금융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또 새 정부 들어 참여정부 당시에 확정된 굵직굵직한 개발계획들이 후순위로 밀려나는 분위기 속에 호남을 하나의 권역으로 설정한 ‘5+2광역경제권’계획의 영향으로 조선산업 클러스터 조성 등 지역전략산업이 새만금 프로젝트에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우려되는 양상이다.
△전방위적인 ‘대한조선 살리기’운동 - 대주그룹을 모기업으로 둔 광주일보는 지난 3일자 1면 톱 기사에서 ‘조선업체 자금 지원 시급’이라는 제목으로 정부차원의 지원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목포와 해남, 신안 등지의 57개 조선소 상당수가 도크 건설이나 선박건조에 필요한 자금을 금융권으로부터 지원받지 못해 애로를 겪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주요 내용이지만 기실 대주그룹이 사활을 걸고 있는 자회사 ‘대한조선’을 살리기 위한 ‘언론플레이’라는 것이 세간의 중론.
같은 날 광주를 찾은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도 방철호 광주시민사회단체총연합 회장, 박흥석 KBC사장, 이정재 전 광주대 총장 등 지역 유력인사들은 강연내용과 상관없이 “대한조선을 살려달라”는 탄원으로 일관해 대한조선 ‘구원병’ 역할을 자처했다.
이들은 “허재호 그룹 회장이 1조원의 사재를 털어 1년 정도 지탱해 왔으나 지난해 세무사찰 등의 영향으로 금융권 융자가 막혀 곤란을 겪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자금지원을 주선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박 수석은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특정기업 말씀만 하니까 곤혹스럽다. 다른 얘기도 건의해달라”며 즉답을 피했다. 광주일보는 4일자 3면 기사에서 박 수석의 이러한 발언을 “조선산업 지원 검토 중”이라는 ‘아전인수’식의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무등산관광호텔에서 있은 박 수석과의 간담회 자리에는 전북도지사 출신의 유종근 대주그룹 회장이 직접 배석해 간담회에 참석한 지역 상공인들과 사전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전남 서남권 조선산업 위기 내용은 - 이처럼 대주그룹과 지역 상공인들이 전방위적인 ‘구명활동’을 벌이는 것은 그만큼 대한조선과 중소 조선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한 지경에 와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대한조선은 현재 60여척, 3조원 상당의 선박건조 물량을 수주해 놓았으나 선주들로부터 선수금을 받기 위한 필수조건인 RG를 금융권으부터 발급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지금 있는 1도크 외에 내년 3월 완공예정인 2도크 건설에도 당장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상황은 크게 외부 환경과 내부 여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외부적으로는 경남 울산·거제에 근거지를 둔 선발 조선업체들이 의도적으로 조선산업 불황설 등을 흘리면서 후발주자인 대한조선의 시장진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또 ‘잃어버린 10년 지우기’에 골똘하고 있는 새 정부가 국책사업이 아닌 사기업들의 사업영역 확대에 쉽게 보따리를 풀 것인지도 미지수.
J프로젝트 예정지내 간척지에 대해서는 뒤늦게 ‘우량농지 활용방침’을 내세워 발목을 잡더니 새만금개발사업 간척지의 경우 농업용지 비중을 70%에서 30%로 대폭 낮추는 등 농림수산부의 ‘이중잣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것을 비롯, 비자금 조성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프라임 그룹의 무안기업도시 출자 포기,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F1사업 등 서남권 개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전혀 읽히지 않고 있는 것도 불안요인.
내부적으로는 지난해 대주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국세청 세무조사의 여파로 부도 직전의 위기까지 내몰리며 유동성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주건설의 미분양 아파트 적체, 기존 대출금에 대한 연체 건 또한 적지 않아 금융권의 평판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는 데 있다.
전남 목포에 소재한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기술력이 좋으면 서로 투자하려는 것이 금융권의 심리”라며 “정부가 설령 RG 발급을 요청한다 해도 관치금융 시절이 아닌 바에야 은행들이 쉽게 움직일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체 활로 없나 -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이 대한조선에 사재를 털어 쏟아 부을 만큼 대한조선의 회생은 그룹 전체의 사활이 달린 문제다.
그룹은 올해 8월까지 대한화재와 대한기초소재 등 주요 계열사와 골프장, 부동산을 매각해 1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했으나 계속되는 부동산 경기 위축과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선박발주 취소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안팎의 시련을 겪고 있다.
대한조선 뿐만이 아니다. 입주업체의 90%가 관련업체인 대불산단을 비롯해 290여 중소 협력업체들도 원자재값 상승난과 대금 지연으로 자금회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한조선을 비롯한 협력업체들의 위기가 자칫 현실화될 경우 그룹 전체가 2차 부도위기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는 것.
방법은 오직 하나, 자기 자본을 마련하거나 새로운 투자자를 물색해 자본을 차입하는 수뿐인데 상황이 여의치만은 않다.
이에 대해 대한조선 관계자는 “현대, 삼성, 대우 등 선발 조선업체들도 자체적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예는 드물다”며 “그렇지만 그룹 자체적으로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조만간 유동성 추가확보 계획을 가지고 있고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강한 만큼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 인근을 GNP 전국평균을 상회하는 지역으로 만들겠다며 의욕적인 출발을 보인 조선산업이 새 정부의 도움을 받아 다시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 지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