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➂] 소설 '삼국지'의 지략은 현재 진행형

90년대 중국 외교정책, ‘재능을 숨기고 힘을 기르다’

2015-01-19     정거배 기자


중국이 세계적으로 연간 생산량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상품은 자동차와 맥주 등 200개 품목이 넘는다. 땅 덩어리가 큰 나라답게 모든 것이 방대하고 규모가 크다.

미국에 있는 초고층도시주거협의회(CTBUH)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높이 200m 이상 건물이 전 세계적으로 총 97동 완공됐는데, 이런 초고층 건물을 가장 많이 건축한 나라는 중국으로, 7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지어진 97동의 초고층 건물 중, 중국 텐진, 충칭, 우한 등에서 58동이 완공된 것이다. 중국은 지난 2013년 초고층 건물을 36동이었던 것에 비해 61% 늘어, 또 한 번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중국의 문학작품을 말한다면 단연 <삼국지>일 것이다.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만 1천명이 넘는 등 그야말로 방대한 스케일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전쟁 규모도 보통 군사들이 5만에서 10만 명에 많게는 100만 명까지 이른다.

그러나 <삼국지> 내용을 모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엄청난 착오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 삼국시대란 지금으로부터 1천800년 전인 서기220년에서부터 서기280년에 이르는 한나라 말 어지러웠던 시대를 가리키며 결국 위나라가 통일하면서 한 시대가 막이 내린다.

소설 <삼국지>와 역사서 <삼국지>는 다르다

기원전 206년에 고조(高祖) 유방(劉邦)이 세운 한나라는 왕망(王莽)의 정변을 깃점으로 전한과 후한 또는 서한과 동한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서기 220년에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가 강압에 의해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써 역사에서 퇴장하고, 조비는 이후 나라 이름을 위(魏)로 바꿨다. 그 후 진(晉)에 이어 남조와 북조시대가 있었는데, 이를 모두 묶어서 위진남북조시대라고 하는데,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시대였으며 서기 581년 수나라가 통일하기 전까지 약 300년 넘게 계속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는 과연 어디까지 소설이고 어디까지 사실일까? 먼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삼국지>라고 하는 것은 실제 있었던 위, 촉, 오 삼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대로부터 1천100여년이 지난 뒤 나관중이 편역한 역사소설이라는 사실이다.

나관중(羅貫中, 1330년?~1400년)은 원나라 말에서 명나라 초기 인물로, 제목은 <삼국지>가 아닌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連義) 또는 삼국연의(三國演義)라고 한다. 반대로 당시 역사를 기록한 정사(正史) <삼국지>는 위나라를 이어 건국된 진(晉)나라 사람 진수(陳壽, 233~297)가 삼국을 통일한 위나라 중심으로 기록한 정통 역사서이다. 따라서 소설<삼국지>는 정사 <삼국지>를 토대로 해서 여러 사실을 첨가하고 삭제하고 해서 소설화 했을 뿐 아니라 천년 넘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이야기를 작가 나관중이 편역했다고 해야 정확하다.

그 뒤 나관중의 <삼국지>는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손질되고 수정되는 등 첨삭과정을 수차례 거쳐 비로소 우리가 접하게 된 것이다.

유명한 적벽대전의 진실

예를 들자면 서기 208년에 있었던 유명한 적벽대전(赤壁大戰)은 천하 통일을 목표로 남진하던 조조 군사와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 양자강에서 벌인 전투이다. 소설<삼국지>에는 위나라 조조의 군대 100만 명과 유비와 손권의 동맹군의 10만 군사가 맞붙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조 군대 30만 명과 유비와 손권의 군사 5만 명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이 되고 있다. 결국 제갈량과 주유의 화공전법으로 조조를 대패시킴으로써 유비는 전략적 요충지 형주를 차지하게 돼 제갈량의 의도대로 천하를 삼분해 3국이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여기서 적벽이란 바위가 원래 붉은 것이 아니라 조조군의 함선과 주둔지가 불에 타면서 주변 바위까지 붉은 색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서기 184년 유비와 장비,관우가 만나 도원결의를 했다는 대목도 실제 역사 기록에는 없다.
특히 소설 <삼국지>는 위나라에 의해 망한 촉나라(또는 촉한)를 중심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진수의 정통역사서 <삼국지>와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소설<삼국지>가 중국인들의 기질과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우리는 소설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국의 역사와 문화도 접할 수 있다.

그 예로 반간계(反間計)란 '적의 첩자를 이용하여 적을 제압하는 계책'으로, 적의 첩자를 포섭해 아군의 첩자로 이용하거나 적의 첩자인 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거짓 정보를 흘려 적을 속이는 방법으로 활용되는 고사성어이다. 패세에 몰린 싸움에서 기사회생해 승리를 이끌어내는 계책이라는 뜻이다. 이런 전술은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놓고 경쟁할 때 유방의 측근 진평이 주도해 항우와 그의 최측근이자 지략가 범증 사이를 이간질시켰다.

또 소설<삼국지> 적벽대전에서 오나라 출신 주유가 북방 육지출신이 대부분인 조조의 군대는 육상 기마전에는 능했지만 수전(水戰)에는 약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전이 강점인 오나라에서 장수 채모와 장윤이 조조에게 투항해 버렸다.

소설<삼국지>의 계책은 현재도 유용하다

이들 투항자들은 조조의 군대를 대결전을 앞두고 수전을 훈련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오나라 장수 주유가 내심 이를 걱정하고 있던 참에 조조의 참모로 주유와 동문수학한 장간이 항복을 권하러 주유를 찾아왔다. 주유는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해 자는 척하면서 탁자 위에 채모와 장윤이 보낸 것처럼 꾸민 편지를 놔두었다. 장간은 이 편지를 보고 훔쳐서 그곳을 빠져나와 위나라 진영으로 돌아와 조조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조조는 채모와 장윤을 오나라의 첩자로 오인해 처형해 버렸다. 따라서 조조의 군대는 수전의 약점을 보완하지 못한 채 유방과 손권 연합군과 결전을 벌이게 되고 결국 화공전법에 속수무책으로 대패하고 말았다.

지난해 7월 한국 김태용 감독과 결혼을 발표한 여배우 탕웨이(湯唯)주연의 영화<색, 계>(色,戒)도 이런 반간계와 내용면에서 비슷하다.

중국은 지난 1976년 혁명 1세대인 저우언라이(主恩來)와 마오쩌둥(毛澤東)이 세상으로 떠나자 2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78년 개혁개방을 통해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다.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끄는 중국의 외교정책은 바로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이를 그대로 풀이하면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으로, 유래는 소설<삼국지>에서 유비가 조조의 식객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재능을 숨기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과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며 내부적으로 힘을 기른다는 것이다. 이런 외교정책은 결국 성공을 거두어 오늘날 중국 경제가 일본을 앞지르고 미국과 경쟁하는 G2국가라는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