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혹세무민 헌금 설교,과부 두 렙돈

예배당 건축 삽질 멈추고 사람과 세상 살리는 교회되자

2010-06-17     김양호 목사
오늘의 한국교회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다. 지난 130여년 짧은 역사속에서도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해 왔지만,그 이면에는 부정적인 그림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세상과 사회가 전혀 기독교에 대해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불신과 반감으로 얼룩져 있다. 어두움이 전혀 빛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부패한 세상이 전혀 교회로부터 소금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빛이 바래지고 소금의 짠 맛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그럼에도 경각심을 제고하는 목소리는 마이너로 밀려나 있고 메이져 교회와 지도자들,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이름으로 바알의 풍요에 빠지고 취하느라 가히 널브러져 있는 형국이다.

한국교회처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설교듣는 열심이 없다. 그러나 듣고 배우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충성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상당부분 성경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한다. 경전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을 바르게 하지 못한다. 지극히 세속적 가치와 바알의 풍요를 자극하는 메시지가 강단에서 흘러 나온다.

예수 이름은 말하지만 십자가와 고난은 들리지 않고 사람들의 허상과 어리석은 욕망을 채워주는 설교가 온 오프라인으로 넘치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오늘의 답답한 한국 사회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두 렙돈 과부 헌금, 예수님의 칭찬아닌 탄식

오래도록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가르쳐 온 것 중의 하나는 과부의 두렙돈 헌금 이야기다. 성전에서 자기의 재산 전부를 다 헌금하는 것을 예수님은 칭찬하는 것으로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헌금하며 헌신해야 한다고 한국교회는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것은 앞 뒤를 잘라버리고 읽기만 하는데서 오는 지독한 오독이다.

두 렙돈 기사는 눅 21:1~4에 있다. 그런데 이 기사만을 따로 떼어서 읽지 않고 그 앞 부분과 뒷 부분에 연결하여 같이 읽고 해석해야만 한다.


적어도 눅 20:45~21:6(막 12:38~13:2)까지 전체를 하나로 보고 이 말씀의 전체 주제 속에 이 두 렙돈 기사가 어떤 의미로 예를 들고 있는가 이해해야 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

이 본문은 당시 서기관들, 즉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예수님께서 비판하는 이야기다. 아니 사실은 비난과 저주에 가까운 심판을 말하고 있다. 세 문단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 문단 : 20:45~47, ② 문단 : 21:1~4, ③ 문단 : 21:5~6이다.

ⓛ 문단은 서기관의 부정적인 삶을 다섯 가지 정도로 예를 들어 고발하고 있는데, 특별히 47절에서 (서기관)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라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서기관들은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다. ② 문단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본문이다.

성전에서 헌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예수님이 과부가 자신의 생활비 전부에 해당하는 두 렙돈을 고스란히 헌금하는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다. ③ 문단은 성전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성전은 매우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며지고 있는 건물이다. 당시 성전은 오랜 세월동안 상당한 돈과 인력을 들여 지어진 매우 크고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이 성전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했는데 오히려 예수님은 이 성전에 대해 다 무너질 것을 선포한다.

이 세문단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늘어져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하신 연결된 말씀이다. ⓛ 제사장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자들이며 그들은 심판을 당할 것이다. ② 그 과부는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다 드려가면서 성전에 헌금을 해야 했다. ③ 그렇게 모아진 헌금으로 꾸며진 이 성전은 역시 무너지고 심판 당한다.

우리가 아는 과부의 두렙돈 헌금은 그녀가 자발적으로 헌금한게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마지막 남은 생활비를 어찌 다 헌금하는가, 아니 하나님이 그런 헌금을 요구하시는가, 예수님이 그런 헌금 태도를 칭찬하시겠는가?

과부 생계비 빼앗아 지은 성전 무너지리라

과부는 자기의 생활비마저 내놓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당시 서기관들은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가산을 삼키며 착취하는 자들이라는게 예수님의 지적이다. 고아와 과부 등은 구약시대 내내 하나님께서 특별히 공동체로 하여금 돌보도록 하셨고 그 책임은 마땅히 종교 지도자들에게 맡겨졌는데, 외려 가난한 이에게 돌려주고 나눠줘야 할 몫을 가로채고, 있는 것마져 빼앗는 서기관과 지도자들의 실상을 예수님은 직설적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과부 헌금은 자발적인 헌금이 아니며 억지로 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서 행해 진 것이므로 결코 긍정적으로 칭찬하는 얘기가 아니다.

서기관들은 이렇게 가난한 자들에게 빼앗다시피하며 걷어들인 헌금으로 무엇을 했는가, 성전을 짓는 일에 주로 사용했다. 얼마나 크고 화려했는지 상상을 초월한 건물이다. 수십년 걸려 지어졌고 수많은 돈과 노동력이 동원되어 지어졌다.

70년경 예루살렘 전쟁때 로마군을 이끌고 쳐들어 온 티투스 장군이 성전을 보고 넋이 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당대 세계제국의 로마는 물론 로마 식민지 전 세계를 다니며 수많은 건축물을 보았을 제국의 장수가 한낱 하찮게 여기는 팔레스타인의 식민지 예루살렘에 상상할 수 없었던 성전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혼을 빼앗길 정도였으니 어느정도였을지 조금은 짐작해 볼만하다.

그렇게 성전 짓는 일에 헌금을 쓰고 그리고 그 서기관들과 종교지도자들은 또 얼마나 부정한 짓들과 이해관계에 얽혀 있었을까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종교적 우월감과 신앙을 자극하면서 성전 짓는다고 헌금을 착취하듯 강요하고 그 많은 재정으로 건물을 짓는 한편 자신들도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이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지어진 성전을 하나님이 온전히 받으실 리 천부당하며 거기에 거룩하심으로 임재하실 리 만부당한 일이다.


그런 건물은 무너져야하며 심판받아야 한다. 과부와 성도들을 혹세무민하고 착취하는 서기관들은 심판 받을 것이며 그들로 지어진 성전이라는 건물도 무너져야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신랄한 비판이며 저주다.

잘못된 헌금강요 설교,강단에서 몰아내야

2천년 전 심판받아 마땅한 종교지도자들의 잘못된 행태와 그로 인해 뒤따르는 신자들의 잘못된 열심, 뒤틀린 신앙이 오늘 현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도 닮은 꼴로 재생되고 있다. 서기관들의 잘못된 가르침 강요처럼 오늘 한국교회 목사들 다수는 강단에서 주일성수와 헌금을 필요이상으로 과잉 설교하고 있다.

반드시 선포되어야할 주제이긴 하나 그것은 마치 아무리 많있는 음식도 한 두가지에 치우치면 몸이 병에 걸리는 것처럼 우리 영혼도 편식으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형국이다. 신앙과 삶에 있어서 성경이 가르치는 수많은 여러 이야기들이 있음에도 1년 52주 대부분의 설교는 본문이 무엇이든간에 결론은 주일성수와 헌금잘하라는 이야기다.

십일조 헌금은 구약의 제도를 오늘날도 획일적으로 적용하며 더군다나 기복 신앙을 자극하는 것에서 보다 깊이있는 이해와 현대적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말라기의 십일조, 솔로몬의 일천번제 그 외 갖가지 명목헌금들로 강요하다시피 가르쳐지는 설교헌금 등은 상당 부분 잘못된 성경 이해와 부정직한 동기에 기초하고 있다.

과부 두렙돈 헌금도 잘못된 동기와 헌신 부추기는 대표적인 악용사례다. 록펠러의 십일조 축복이 강단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활용되는 것 역시 대단한 무지와 뒤틀린 오늘 한국교회 어두운 그림자의 표본이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서기관들의 행태와 너무도 닮아있는 오늘 지도자들의 혹세무민이 실로 너무 가슴 아픈 현실이다.


한국교회처럼 우리 사회에서 인적 물적토대가 강력한 집단이 또 있을까? 그런데 우린 그렇게 축복받은 자양분으로 전혀 이 세상과 사회를 제대로 섬기지도 나누지도 못하고 불의한 기득층에 기생하며 바알의 권력과 맘몬 추구하느라 우리의 이웃들과는 오히려 담을 쌓고 지내는 게토공화국을 형성하고 있다.

이웃이 고통스러워하며 사회가 분열과 갈등으로 골이 높으며 자연 생태계가 신음하여도 전혀 외면하는 한국교회와 지도자들, 하나님나라 이상과 비전은 교회주의에 포로로 가둬 두고 내부의 이해와 욕구에만 골몰하며 예배당 건축과 부동산 축재에만 매몰되어 있는 정신질환은 2천년전의 어리석고 탐욕스런 서기관들의 모습이다.

교회는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직하게 성경을 읽고 정직하게 가르치며 바른 신앙, 바른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교회와 성도들이 건강하게 여물져야 한다. 하나님나라 공동체는 이웃과 사회의 아픔에 응답하며 자연 만물의 고통 앞에 청지기적 소명을 회복하여야 한다.

분단과 갈등의 자리에 화합과 치유의 손길을 내밀며 중보자의 태도와 자세가 세워져야 한다. 빛을 밝혀 어둠을 비추고 짠 맛을 회복하여 세상의 부패를 막아내는 교회, 정직한 말씀앞에 다시 서는 교회와 목사들 성도들로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일에 충성하기를 소망해 본다.<목포 하누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