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열정만큼이나 나라의 앞날 관심 가졌으면
나라의 미래를 노년층 선택에 맡기는 것은 대한민국의 아이러니
2006-06-20 정거배 기자
이면에는 교묘하게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방송매체를 비롯한 미디어와 이벤트를 통해 이익을 챙기려는 기업들의 술책이 있음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마치 2002년 월드컵 4강을 연상하며 이번 독일에서도 4강을 당연히 바라고 있는 듯하다.
우리국민 대부분 2002년과 2006년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뿌리에는 앞서 언급한 축구경기의 승패를 떠나 즐기는 차원이 아닌 잇속을 챙기려는 기업들의 상업주의와 집단마취가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 매체에서는 붉은악마와 길거리 응원이니 하며 마치 지난 2002년 4강 시나리오를 미리 예견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속담을 떠올리면 걱정이 앞선다. 월드컵은 7월이면 막을 내린다. 또 4년 뒤에는 다시 열린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스포츠의 세계는 16강이니 4강이기에 앞서 역사의 진보와 관계가 없는 온 인류가 즐기는 스포츠 종목의 하나일 뿐이다.
지난 2002년과 마찬가지로 젊은 20대들의 애국적인(?) 응원열기가 한국의 월드컵 열기를 달구는 촉발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의 광풍 속에서 나는 그들에게 꼭 한마디 해주고 싶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한ㆍ미 FTA를 비롯해 평택미군기지 문제,
그리고 지난 5ㆍ31 지방선거 결과처럼 수구반동세력의 대표격인 한나라당의 압승은 40대인 나보다 이 나라 이땅에서 더 오래 살아야 할 길거리 응원의 주역인 20대들의 미래를 좌우하는 최대 현안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이 나라, 이 민족의 앞날에 대해 관심과 고민이 가졌으면 한다.
5ㆍ31 지방선거 투표율이 51.3%에 그쳤다. 이번 지방선거는 만19세까지 투표권이 확대돼 선거권자는 3천7백6만4천282명이었다. 이 가운데 권리를 포기한 유권자가 1천794만6천105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회의 불행은 젊은층 이른바 20,30대의 투표율은 낮고 5,6,70대 투표율은 높았다는 사실이다. 젊은층은 10명 중 4명이 투표에 참여한 반면 장년노년층은 10명 7명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투표는 나라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결정하는 국민의 의사표시임에도 이 나라의 미래를 살아야 할 2,30대는 기권율이 높고 미래에는 묘지에 묻혀 있을 노년층이 이 나라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ㆍ30대 젊은층에 비해 이 땅에서 그리 오래 살지 못하는 노년층이 나라의 미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자체만 보더라도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그렇다고 노년층이 투표장에 가는 가체를 경원시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의 선택이 자칫 과거 이데올로기와 고집 그리고 편견에 젖어 투표권을 행사한 결과 대한민국은 미래지향적인 길이 아닌 국민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다.
실례로 지난 92년 대통령 선거 때 민자당의 김영삼, 평민당의 김대중, 국민당의 정주영 후보가 격돌했다. 투표에 참여한 대다수는 결국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물론 김대중을 선택했었더라도 IMF가 오지 않았다고 단정 할 수는 없지만, 무능한 김영삼 정권을 선택한 댓가로 온 국민은 엄청난 고난을 치러야만 했다.
92년 대선 당시 젊은층은 투표율이 낮는 반면 60대 이상 노년층은 투표율은 높았다. 노년층은 그들의 손자나 자식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채 오직 편협된 지역정서와 고정관념에 기초해 김영삼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 결과 IMF체제가 들이 닥치자 노년층의 손자와 자식들은 다니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는 등 할아버지들의 잘못된 선택의 댓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당시 투표장에 가서 김영삼을 찍었던 노년층은 국가의 일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였다.
싫든 좋든 미래를 살아야 할 젊은이들은 미래를 선택하는 자리를 외면한 결과다. 반면에 연령으로 보면 그럴 수 없는 노년층 유권자들의 여론으로 결정된 미래는 지금의 젊은층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 것이다.
월드컵을 맞아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이 돼야 하지 않을까.
19세기 러시아 문학가 네크라소프는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며 시를 통해 짜르 전제군주의 폭정에 침묵하고 고통받은 국민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향해 울분을 쏟아냈다.
이 나라 젊은층들이 찍을 사람 없어서 투표 안한다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말을 하기보다는 진정으로 이 땅의 주인행세를 하기 위해서는 주인의 도리를 다해야 되지 않을까.
한국정치에 대해, 국회의원에 대해 술자리에서 천만번 욕하더라고 우리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그 나라 정치수준은 바로 그 나라 국민 수준이라는 것’이다.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국민에게 선택권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하지 않으면서 취직이 되니 안돼니 하는 대안없고 무책임한 비난보다는 주어진 권리를 행하고 자신들이 살아야 할 나라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고뇌하는 자세가 아쉽다.